2025년 5월, 한진칼은 보유 중이던 자기주식 약 44만 주(지분율 약 0.7%)를 자사 복리후생기금에 현물 출연했다. 액면으로는 662억 원 규모의 처분이었다. 회사는 이 결정을 “임직원 복지 향상”을 위한 목적이라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그 배경을 다르게 해석했다. 이는 명백히, 향후 경영권 분쟁을 염두에 둔 의결권 부활 조치였다.
원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이는 상법상 명시된 규정이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이면 그 주식은 ‘입을 닫은 주식’이 된다. 아무리 많은 수를 보유하더라도,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고, 총 의결권 계산에서도 빠진다. 하지만 이 자사주를 회사 외부의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출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근로복지기금처럼 회사와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단체로 넘기면, 그 주식은 다시 ‘의결권이 살아난다.’
한진칼은 정확히 이 점을 노렸다. 2022년 이후 조원태 회장과 한진칼의 지배력을 위협해 온 최대 변수는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의 존재다. 호반건설 등 계열을 통해 약 18.46%의 지분을 확보한 호반그룹은 조 회장 측(특수관계인 포함 20.21%)과 단 2.3% 차이를 유지하며, 향후 표 대결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조 회장 측은 과거 KCGI 연합과의 분쟁에서도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주 의결권이 부활한다면? 불과 0.7%라지만, 경영권 분쟁이 다시 촉발될 경우 한 표, 두 표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국면에서 이 0.7%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출연으로 조 회장 측의 실질 우호 지분은 약 0.66%포인트 상승했다. 수치상 소폭일지 몰라도, 상징적 효과는 작지 않다. 중요한 건 ‘불리한 게임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구조 설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더욱 논란이 되는 지점은 그 형식이다. ‘복리후생’이라는 이름이다. 한진칼 복지기금 수혜 대상은 약 25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해 662억 원 규모의 주식을 출연했다? 수혜 대상 1인당 약 26억 원에 해당하는 자산이 출연된 셈이다. 아무리 후한 복지를 지향한다고 해도, 수치의 불균형이 지나치다. 실질적 목적이 복지인지, 아니면 복지를 명분 삼은 지배력 확보 수단인지, 시장은 이미 판단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선택’으로 볼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법적으로는 허용된다는 점이다. 상법상 자사주를 복지기금에 출연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그리고 복지기금이 받은 주식은 ‘제3자 보유분’이 되므로 의결권을 갖는다. 형식적 합법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법이 보호하려 했던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는가?
과거에도 여러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사한 방식을 써왔다. 하지만 이를 방지할 장치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최근 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 금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한진칼의 이번 조치는 그러한 입법 취지의 정당성을 오히려 증명해주는 사례다.
자본시장에서 자사주는 원래 ‘주주가치 제고’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기업이 스스로 주식을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고, 이는 주당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사주가 지배력 유지, 주가 관리, 경영권 방어의 도구로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잦다. 자사주를 일정 시점에 되팔거나, 계열사에 넘기거나, 복지기금에 출연함으로써 사실상 총수일가의 ‘숨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주식은 회사의 돈으로 사들인 것이다. 소수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 자산이 활용되었는데, 거기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회사가 자기 돈으로 주식을 사두었다가, 정작 경영권 위협이 닥치면 ‘복지기금’이라는 포장지를 입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그 주식은 다시 목소리를 낸다. 주총장에서 말이다.
한진칼이 한 행동은 대한민국 상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그 행위가 법의 정신과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철학에 부합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조원태 회장 측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부당이득 환수제’를 강조하며 자본시장의 정상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편법이 합법의 탈을 쓰고 구조화되는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자본시장은 언제든 ‘가면을 쓴 불공정’으로 회귀할 수 있다. 편법이 전략이 되는 구조,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
자사주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한진칼의 이번 조치는, 말 없는 자사주에 목소리를 다시 쥐어준 사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작동한다. 지배권 사수 그 목적에 회사의 돈이 쓰이고, 주주의 권리가 희생된다면, 그것은 정당한가?
지금 필요한 건 묻는 것이다. 이 구조가 공정한가? 이 선택이 주주의 권익을 대변하는가? 그리고 이 시장이 진정한 자본시장인가? 그 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